1. 새로운 빙하기, 그리고 설국 17년 줄거리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린 지구. 지구 온난화 문제와 심각한 기상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서, 각국 정보는 기후 조절 물질의 일종인 CW-7을 살포하지만, 이 물질의 부작용으로 인해 제2의 빙하기가 닥쳐오고, 꽁꽁 얼어붙은 지구의 환경 속에서, 도저히 인간이 생존할 수 없게 되어, 차갑고 어두운 암흑의 세계로 변화하게 된다. 기상 이변에 의한 빙하기에 생존한다는 건 1년 동안 쉴 새없이 밤새도록 질주하는 설국열차가 전부. 열차에선,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의 꼬리 칸, 그리고 선택된 사람들이 술과 마약 등 환락을 즐기며 호화로운 객실을 뒹굴고 있는 앞쪽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꼬리 칸 사람들은 자신들을 가축만도 못한 취급하는 생활에 불만을 품고 젊은 지도자 커티스를 중심으로 대반란을 시도했다. 소동 끝에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를 만난 꼬리 칸 사람들. 그들은 남궁민수에게 문을 하나씩 열어줄 때마다 크로놀을 하나씩 주겠다고 승낙했고 열차 밖으로 나가는 게 소원이었던 그 또한 크로놀 두 개라는 조건을 내걸고 자신의 딸 요나와 동맹을 한다. 이렇게 연합한 이들은 점점 앞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극에 달한다.
2. 숨가쁜 반란의 여정. 노아의 방주 설국열차
아무도 가본 적 없는 맨 앞칸, 기차의 해방을 위해서 반드시 도달해야 할 엔진까지 가는 주인공 커티스의 여정은 칸이 바뀔 때마다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사투로 관객을 이끈다. 기상 이변으로 인해 지구에 닥친 빙하기, 살아남은 인류를 태우고 달리는 기차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영화를 풀어간다. 묵시록적인 SF를 연상하기 딱 좋지만,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듯 장르의 통념을 벗어나 달려 나간다. SF 장르의 기술적 새로움과 VFX의 비주얼 스펙터클에 기대기보다는, 좁고 긴 기차 안을 벗어날 수 없는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밀도 높은 긴장과 충돌을 기본 동력으로 삼는다. 그리고 질주하는 거대한 쇳덩어리, 기차가 가진 본질적인 에너지에 힘을 싣는다. 인류의 마지막 날, 가까스로 기차에 올라탄 꼬리 칸 사람들이 헐벗은 채 창도 없는 비좁은 화물칸에서 생존을 목표로 바글대는 것과 달리, 비싼 티켓으로 탑승한 앞쪽만 사람들은 술과 마약이 난무하는 사치 속에 꼬리 칸을 억압한다. 그리고 마침내 분노한 이들의 폭동이 일어나고 그들이 돌진하기 시작하는 순간, 영화는 전복의 쾌감과 함께 숨 가쁘게 관객을 앞으로 실어 나른다. 모든 반란이 그렇듯, 압도적 열세를 딛고 일어선 꼬리 칸의 전사들은 칸을 돌파해 낼 때마다 앞쪽만의 군인들에 맞서 몸과 몸이 직접 부딪히는 생생한 액션을 스크린에 구현한다. 또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주인공들도 달려가는, 이중의 질주와 이중의 폭주는 영화의 기본적인 무드로 깔리며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쾌감을 선사한다.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간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위해 발버둥 치는지 출구 없는 기차의 특성상 현미경 들여다보듯 그릴 수 있어서 매력적이었다는 감독의 말은, 멸망 이후 노아의 방주가 된 기차라는 특수한 시공을 가로지르는가 드라마의 밀도는 더욱 깊어지고 오락영화의 쾌감과 재미는 한층 더 확장됐다고 한다.
3. 상상력의 경계를 넓혔던 설국열차 영화 후기
지구촌 전체를 싣고 달리는 설국열차의 엔진이 가지는 성질에 주목하라. 이 영화에서 독재를 하는 것은 윌포드가 아니라 미국적 자유주의라는 엔진이다. 철학적인 문제라 이해하기 난해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재밌는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열차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우상, 열차의 엔진. 감독은 그것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통해 엔진의 독재를 아주 소름 돋게 표현하고 있다. 열차에서 이탈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할 뿐이다. 왜냐하면 미국 예외주의와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의 제도와 인권과 민주주의는 인류가 여태 만들어놓은 것 중 가장 완벽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열차는 바깥의 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유일무이한 시스템이다. 실제로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 금융 기구는 후진국에 차관을 내주면서 그들이 국가의 법 제도를 미국의 법 제도와 유사하게 수정할 것을 요구하며 미국적 자유주의를 전파하고 있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법 앞에 평등과 같은 미국적 인권. 보이지 않는 손 같은 자유 시장의 원리. 미국적 자유주의가 세계의 각국의 정치 철학을 독점하고 있다. 총리가 내뱉는 광기 어린 연설, 아이들을 세뇌하는 선생님 등, 봉준호가 영화 전체에 걸쳐 이렇게 노골적인 파시즘적 요소들을 설치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엔진의 독재에 대해서 강력한 풍자를 날리고 있다. 이렇게 열차와 엔진의 의미를 설정하고 나면 더 재밌는 것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윌포드 Wilford가 CIA 등을 후원하며 미국 자유주의를 수호하다시피 했던 포드 Ford 재단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추측은 설국열차의 배경이 되는 빙하기가 냉전 시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런 추측들은 약간 비약이 될 수 있으나 이렇게 해석한다면 설국열차는 거의 확실히, 냉전 이후 자유주의라는 엔진들 달고 세계의 모든 국가를 싣고 달리는 미국이라는 열차가 된다. 그리고 그러한 엔진이 정치 철학이라는 딱딱한 '시스템'인데 반해, 커티스의 한쪽 팔 희생이라든지 이미 엄마의 모성애 같은 것은 뜨거운 인간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대비시킴으로써 엔진을 더욱 몰인정하고 무자비한 것으로 비추어지게끔 하는 효과가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재밌는 점이 나타나는데, 영원하고 완벽한 것처럼 보이던 그 엔진이 사실은 고장이 났고, 어떤 부품은 사라져서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를 집어넣어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커티스가 자신의 한쪽 팔을 버리면서 그 엔진을 멈추고 치미를 꺼낸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열차 밖의 넓은 공간으로 나서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라. 미국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유'는 독재 열차의 내부가 아니라 그 밖의 무한한 공간에 있었다고 하면 비약이 될까? 그 자유의 땅에서 요나와 치미가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열차 파괴가 과연 현명한 일이었는지도 알 수 없으며, 평화와 희망을 보여주는 비둘기라도 날아야 할 텐데 그 대신 북극곰이 어슬렁거리는 절망적? 인 그림을 보여주는 건 앞길도 순탄치 않으리라는 암시이다.
열차 내부에서 일어나는 혁명과 그를 둘러싼 각종 음모와 계략들은 결국 미국적 자유주의의 파시즘이 이끄는 '열차' 내부의, 우리 지구촌의 현실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봉준호가 영화의 마지막에서 남궁민수와 그 딸 요나를 이용해 열차 자체를 개박살 내버렸다는 것이다. 난 솔직히 전율이 일었다. 플레이타임 두 시간에 달하는 영화는 이 한 장면을 멋지게 그리기 위한 전주에 불과했다. 열차를 너무 섣불리 파괴한 것일지도 모르고, 요나와 치미가 윌포드의 열차보다 더 훌륭한 설국열차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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