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극과 극의 삶을 사는 두 가족의 만남이 빚어낸 신선한 스토리
공생이 어려워진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에서 전작을 통틀어 최초로 가족 구성원을 부모와 자녀가 다 함께 있는 형태로 설정했다. 또한 봉준호 감독의 작품 중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적 특성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된 영화다. 주인공들은 지금 여기, 마치 우리 옆집이나 옆 동네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두 가족이다. 이 두 가족은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4인 구성이라는 닮은 점도 있지만 그 삶의 형편은 그야말로 극과 극이라 일상에서 만날 일도 엮일 일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과외 면접’이라는 상황을 주면서 두 가족 사이에 연결점이 생기고, 예측 불가능한 만남이 시작된다. 그런 그가 등장시킨 주인공은 도저히 만날 일 없어 보이는 극과 극의 삶의 조건을 가진 ‘두 가족’이다. ‘어설픈 의도’와 ‘몇 번의 우연들’이 겹치며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빠져드는 두 가족의 운명은 공생(共生)을 꿈꾸는 것 자체가 점차 공상(空想)이 되어가는 현대 사회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돌이켜보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현시대에 대한 이야기였다. 기생충에서는 부와 권력에 따라 서열화된 우리 시대 계급 문제가 보였고, 에서는 공장식 축산 시대 속에 고통받는 동물들의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항상 상생 또는 공생을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느낀다. 그것은 개인의 의지나 잘잘못과 무관한 것이 되었다. 봉준호 감독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함께 잘 산다’는 것에 대해 그만의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영화에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두 가족의 충돌이 매번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을 터트리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슬픔을 선사하지만 그 누구도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걸 보여준다.
2. 예측불허의 삶을 가로지르는 코미디와 서스펜스 그리고 슬픈 공감!
특정 장르의 틀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이 빚어낸 새로운 이야기에 현실과 사회에 대한 풍자와 날 선 비판을 담아 봉준호만의 독창적인 장르를 선보여 왔었다. 봉준호 감독은 항상 자신만의 화두와 스타일로 신선한 소재를 흥미롭고 완성도 높게 다뤄 평단의 지지와 관객의 사랑을 두루 받아왔다. 7번째 장편인 기생충은 그중에서도 가장 예측 불가능한 전개와 재미를 선사한다. 온 가족이 전원 백수인 기택네 가족은 요금을 못내 가족 전원의 핸드폰이 끊길 정도로 살기 막막하다. 하지만 평화롭기 그지없는 가족들의 일상과 대화는 상황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웃음을 유발한다. 또한 가족의 고정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과외 선생 면접을 통과해야만 하는 기택네 장남과 막내딸의 포부는 치밀한 범죄 모의라기 보다는 가족들의 평범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엉뚱한 절박함으로 느껴져 헛웃음을 짓게 한다. 기생충은 두 가족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같이 잘 살고 싶었던 백수 가족의 엉뚱한 희망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극의 전개는 현실과 인생의 특성이기도 한 희비극적 정서를 충격과 공감으로 전해주며 봉준호만의 가족 희비극을 신선한 스토리로 이끌어냈다.
3. 기생충이 보여주는 지금 사회의 대한 메세지
기택 가족은 특별한 삶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데 그조차도 쉽지 않은 반지하에 사는 서민 가족이다. 반복되는 실패를 겪은 가장 기택과 대학 입시에 여러 차례 실패한 후 백수로 지내고 있는 아들과 딸. 그다지 잘 풀리지 않은 운동선수 출신의 아내로 구성되어 있다. 박 사장 가족은 IT기업 CEO로 (재벌가는 아닌) 새롭고 유능한 부유층 가족이다. 박사 장은 열심히 일하는 워커 홀릭 가장 같다.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고등학생 딸과 어린 아들. 이상적인 4인 가족처럼 보일 수도 있는, 세련된 도시 부유층 가정이다. 상생 공생의 삶을 원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기생의 처지로 내몰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같이 잘 살고 싶어도, 같이 잘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그리며 거기서 우러나오는 웃음과 공포와 슬픔을 담은 희비극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문 제목이라서 초기에는 다들 크리쳐 영화나 Sci-fi 영화로 짐작하더라. 의 영어 제목이 다 보니, 그것과 맞물려서 더 그런 것 같다. 여러 번 밝혔듯, 이 영화는 현실의 가족들이 주인공인 영화이다. 제목도 반어적인 제목이다. 기생충이라는 작명과도 맥락이 비슷한데, 살인이 어떻게 추억이 될 수 있나? 그래도 되는가? 한 시대를 기억하는 가늠자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다뤘던 것처럼, 도 ‘과연? 왜? 그들이?’라는 반어적 뉘앙스와 맥락을 가지고 있다. 극과 극으로 양극화가 진행되어 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슬픈 코미디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외의 대안이 없는, 자본주의가 유일한 세계 질서가 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맞닥뜨린 부정할 수 없는 질서다. 현실에서는 영화에 나오는 백수 가택 가족과 박사방 너의 동선은 절대 겹칠 일이 없다. 유일하게 양극단의 경제 계층 사이에 동선이 겹치는 경우는 과외 선생님이나 가사도우미 같은 직군에 해당한다.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밀접하게 두 계층이 만나는 순간이 있다. 이 영화는 두 계층이 만나 어느 한쪽도 악한 의도를 품고 있지 않지만, 자칫 삐걱거릴 경우에 벌어질 수 있는 균열과 파열음을 따라간다.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는 사실은 보이지 않는 신분과 계급이 있다. 그걸 잘 포장해서 감춰보려고 하고, 표면적으로는 신분제를 구시대의 유물처럼 비웃지만, 계층 간에 건널 수 없는 선이 짙게 그어져 있는 게 현실이다. 양극화되어 있는 사회의 모습이 두 계층이 만나는 묘한 접점에서 가장 민감하고 예민하게 우리 살갗에 와닿는 것처럼,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그 틈새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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